태그 : 블로그이전
- 2012/01/2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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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5/28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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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minihp.cyworld.com/pims/main/pims_main.asp?tid=57364053
1. 한 학자를 마스터한다. 원전을 보든, 번역본을 보든, 강의를 듣든, 개설서를 보든, 인터넷 블로그를 보든, 하여간 마스터. 마스터의 기준은 엄밀하지 않으나, 대강 해당 학자로 논문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소설 쓰고 있네'라는 소리 안 들을 자신 있을 정도면 충분함.
2. 이 학자의 관점에서 관계되는 다른 학자들을 평가해본다. 예컨대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플라톤의 <국가론>을 비판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3. 여기서부터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해당 학자와 관계되는 학자들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면, 이번엔 거꾸로 해당 학자를 비판하는 작업을 해본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함. 비유를 하자면, 스승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른 뒤, 스승까지 뛰어넘어보이는 것. (소...소년물인가. ;;)
4. 이렇게 하면 어디가서 얼치기 소리는 안 들음.
저는 2번까진 해봤고 3번은 진행 중인데, 확실히 좌충우돌식으로 아무거나 읽어보는 것보다는 자신의 안경 역할을 해줄 거장의 관점을 숙지할 수 있을만큼 숙지하고 다른 책들을 읽어보는 게 좋은 듯. 훨씬 진도가 빠름. 게다가 자연스럽게 맥락이 잡힘. 이를테면 마르크스를 마스터하면 사회학 전반은 물론이고, 케인스주의, 고전경제학, 신자유주의, 비판이론, 사민주의, 유토피아주의, 페미니즘, 신좌파, 생태운동 등등에 대한 이해도가 함꼐 올라감. 칸트를 마스터하면 근대철학 일반도 자연스럽게 터득되고, 고대철학과 근대철학의 차이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롤즈나 지젝 같은 현대철학자에 대한 이해도도 올라가겠죠.
1. 한 학자를 마스터한다. 원전을 보든, 번역본을 보든, 강의를 듣든, 개설서를 보든, 인터넷 블로그를 보든, 하여간 마스터. 마스터의 기준은 엄밀하지 않으나, 대강 해당 학자로 논문을 쓴다고 가정했을 때 '소설 쓰고 있네'라는 소리 안 들을 자신 있을 정도면 충분함.
2. 이 학자의 관점에서 관계되는 다른 학자들을 평가해본다. 예컨대 자신이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플라톤의 <국가론>을 비판해본다든가 하는 식으로.
3. 여기서부터 중요한데, 이런 식으로 해당 학자와 관계되는 학자들에 대한 평가가 끝났다면, 이번엔 거꾸로 해당 학자를 비판하는 작업을 해본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함. 비유를 하자면, 스승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기른 뒤, 스승까지 뛰어넘어보이는 것. (소...소년물인가. ;;)
4. 이렇게 하면 어디가서 얼치기 소리는 안 들음.
저는 2번까진 해봤고 3번은 진행 중인데, 확실히 좌충우돌식으로 아무거나 읽어보는 것보다는 자신의 안경 역할을 해줄 거장의 관점을 숙지할 수 있을만큼 숙지하고 다른 책들을 읽어보는 게 좋은 듯. 훨씬 진도가 빠름. 게다가 자연스럽게 맥락이 잡힘. 이를테면 마르크스를 마스터하면 사회학 전반은 물론이고, 케인스주의, 고전경제학, 신자유주의, 비판이론, 사민주의, 유토피아주의, 페미니즘, 신좌파, 생태운동 등등에 대한 이해도가 함꼐 올라감. 칸트를 마스터하면 근대철학 일반도 자연스럽게 터득되고, 고대철학과 근대철학의 차이도 알 수 있게 될 것이며, 롤즈나 지젝 같은 현대철학자에 대한 이해도도 올라가겠죠.
- 2011/05/28 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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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앞에서 대놓고 말은 못해도, 저는 스스로가 모범적인 글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견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소 대중적인 스타일은 아니긴 합니다만, 적어도 비문을 쓰지 않고, 서론과 본론과 결론의 구성을 사리에 맞게 할 수 있으며(제대로 하는 이는 사실 손에 꼽습니다. 대학에서 만난 사람 중에서 단 2명만이 이걸 지킬 줄 알더군요.),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분명히 한계지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불건전한 정신의 영향인지 글쓰기가 잘 안 되더군요. 그래서 어차피 가지고 있어도 쓸모없는 팁들이나 남들과 공유해서 남들이라도 좋은 글 쓰게 만들자는 생각으로 글을 써봅니다. 물론 전문적인 서술을 할 자신은 없습니다. 이론화할 생각이 없으며, 경험에 근거한 서술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또한, 글의 전개 역시 정형화되지 못한 수필에 가까울 것입니다.
단언하건데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쓰기보다는 읽기입니다. 일관성 있는 사고틀이 확립되지 못하며,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뭘 써봐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발전이 없죠. 내용이 단단하지 못하고 겉멋만 들어간 글이 되기 쉽습니다. 비유나 자평만 남발하죠.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조금만 감식안 있는 사람이 보면 금방 들통납니다.
개인차를 무시한 일반론을 말하자면, 평생 한 번도 글을 써보지 않았지만 1000권의 사회과학 서적을 읽어본 사람이 100권의 문학을 읽고 작문을 자주 시도해본 사람보다 글을 잘 쓸 것 입니다. 기본기 자체가 다르거든요. 기본기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이 지면에서 논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적어도 몇 가지를 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1.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능력.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당파적으로 평가를 할 영역과 지시적으로 설명을 할 영역을 구분하는 능력.
2. 정의를 적확히 내리는 능력. 정의할 때 편견을 개입시키면 안 됩니다.
3. 개념들을 미사여구 없이 최소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4. 그때 그때 논의 영역을 제한하고, 제한하는 근거를 무리 없이 밝혀낼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이며, 왜 그것에 대해서 말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설정해내는 능력.
5.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 곧, 개연성 있게 서술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능력. 비문을 쓰지 않는 능력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6.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규범에 맞게 구성할 수 있는 능력. 사실 이건 절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서론에서는 ABC에 대해서 말할 것을 밝히고, 본론에서 ABC를 설명하고, 결론에서 본론을 요약한 뒤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견해를 추가하면 됩니다. 굳이 어렵게 어떤 문장을 써야할지 고민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써야할 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 기본기를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이 글 쓰는 방식으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혼돈에 대한 혼돈의 이론이고, 사회적 어리석음에 대한 어리석은 찬양이며, 파국에 대한 파국적인 정치관리이다.”
이게 대학원생이 석사논문 서두에 쓴 말입니다. 학력에 맞지 않게 무식이 퉁탕 튀죠. 이것은 정의라고 볼 수 없습니다. 독설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합니다. 이 대학원생의 말대로라면 '경제적 혼돈에 대한 혼돈스러운 이론', '사회적 어리석음에 대한 어리석은 찬양', '파국에 대한 파국적인 정치관리'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신자유주의가 된다는 뜻인데, 이런 식이라면 박정희라든가 히틀러라든가 스탈린이라든가 아나키스트들도 신자유주의자가 됩니다. 정의에 사감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런 반문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읽어야 하냐. 무엇을 읽어야 하냐. 너무 막막하다.' 다독 그 자체가 왕도이긴 합니다만, 효율의 차원을 고려해보자면 보다 나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것은 사고틀을 확립시켜줄 수 있는 특정한 사상체계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특정 학자 - 사회과학자가 낫습니다 - 한 명의 사상체계를 마스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일진급 학자가 '학'을 다루는 방법론이나 태도를 학습하게 되기에 기본기가 쌓이게 되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 어떤 견지에서 비판을 전개하는지를 배우게 되기 때문에 해당 학자를 둘러싼 논쟁 자체에 대해 학습하게 되는 것은 물론, 전체 학문 체계 자체를 파악을 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마르크스에 정통하게 된 사람은 자유주의/사회주의/신좌파/페미니즘/구조주의/공동체주의 등의 사조와 경제학/역사학/사회학/철학/정치학/법학/정신분석학/문학 등의 개별과학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심 분야 하나를 정해서 그 분야에 해당하는 학자의 견해를 반복적으로 학습한다면, 단기간에 독해력이 증진될 것이며 글쓰기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외 자잘한 팁
- 무조건 짧게 쓰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에서는 20줄 정도가 한 문장인 경우도 있습니다. 읽다보면 숨이 가쁘죠. 그렇지만 독자의 시선을 뗄 수 없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강조를 주는 거죠.
- 의도적으로 관념어들 사이에 순수 우리말을 섞어 씀으로서 강조를 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위에서 제가 '무식이 퉁탕 튀는'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는데, 다소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시선은 확실히 끌 수 있습니다.
- 이와 유사하게, 한자나 영어를 섞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보다 'Point of no return'이라고 쓰는 게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에 좋습니다.
-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정의는 적확해야 하며 뜬구름 잡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됩니다. "천문학은 우주와 그것이 포함하는 천체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쓰는 것이 정답이고, "한 순간의 선택은 시간을 거쳐 태풍이 된다"라고 쓰는 것은 오답입니다.
- 위에 언급되었던 나쁜 정의에 반하는, 좋은 정의의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통치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 하나가 이념적 정치적 타자를 폭력으로 분쇄하는 완력장치라면, 또 하나는 매체 군대 등 기제들을 동원해서 국가와 자본 독재에 대한 피지배자의 합의를 조장하는 등 사회적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정의할 대상을 먼저 제시한 뒤, 이에 부합하는 정의를 제시합니다. 이런 것은 시를 100번 필사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단언하건데 글쓰기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쓰기보다는 읽기입니다. 일관성 있는 사고틀이 확립되지 못하며, 데이터 자체가 부족한 상태에서는 뭘 써봐도 거기서 거기입니다. 발전이 없죠. 내용이 단단하지 못하고 겉멋만 들어간 글이 되기 쉽습니다. 비유나 자평만 남발하죠.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럴 듯 해보이지만 조금만 감식안 있는 사람이 보면 금방 들통납니다.
개인차를 무시한 일반론을 말하자면, 평생 한 번도 글을 써보지 않았지만 1000권의 사회과학 서적을 읽어본 사람이 100권의 문학을 읽고 작문을 자주 시도해본 사람보다 글을 잘 쓸 것 입니다. 기본기 자체가 다르거든요. 기본기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은 이 지면에서 논하기 어렵겠습니다만, 적어도 몇 가지를 들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1. 객관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능력. 보다 엄밀하게 말하면 당파적으로 평가를 할 영역과 지시적으로 설명을 할 영역을 구분하는 능력.
2. 정의를 적확히 내리는 능력. 정의할 때 편견을 개입시키면 안 됩니다.
3. 개념들을 미사여구 없이 최소한의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
4. 그때 그때 논의 영역을 제한하고, 제한하는 근거를 무리 없이 밝혀낼 수 있는 능력.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에 대해 말할 것이며, 왜 그것에 대해서 말할 것인지를 정확하게 설정해내는 능력.
5. 단어와 단어,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이어나갈 수 있는 능력. 곧, 개연성 있게 서술을 전개해나갈 수 있는 능력. 비문을 쓰지 않는 능력도 여기에 들어갑니다.
6. 서론과 본론과 결론을 규범에 맞게 구성할 수 있는 능력. 사실 이건 절대 어려운 게 아닙니다. 서론에서는 ABC에 대해서 말할 것을 밝히고, 본론에서 ABC를 설명하고, 결론에서 본론을 요약한 뒤 자연스럽게 도출될 수 있는 견해를 추가하면 됩니다. 굳이 어렵게 어떤 문장을 써야할지 고민할 이유조차 없습니다. 써야할 게 정해져 있으니까요.
* 기본기를 학습하지 못한 사람들이 글 쓰는 방식으로 좋은 예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경제적 혼돈에 대한 혼돈의 이론이고, 사회적 어리석음에 대한 어리석은 찬양이며, 파국에 대한 파국적인 정치관리이다.”
이게 대학원생이 석사논문 서두에 쓴 말입니다. 학력에 맞지 않게 무식이 퉁탕 튀죠. 이것은 정의라고 볼 수 없습니다. 독설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합니다. 이 대학원생의 말대로라면 '경제적 혼돈에 대한 혼돈스러운 이론', '사회적 어리석음에 대한 어리석은 찬양', '파국에 대한 파국적인 정치관리'라는 세 가지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 신자유주의가 된다는 뜻인데, 이런 식이라면 박정희라든가 히틀러라든가 스탈린이라든가 아나키스트들도 신자유주의자가 됩니다. 정의에 사감이 개입되었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자연히 이런 반문을 하시게 될 것입니다. '어느 정도로 읽어야 하냐. 무엇을 읽어야 하냐. 너무 막막하다.' 다독 그 자체가 왕도이긴 합니다만, 효율의 차원을 고려해보자면 보다 나은 방법이 있긴 합니다. 그것은 사고틀을 확립시켜줄 수 있는 특정한 사상체계를 반복적으로 학습하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해, 특정 학자 - 사회과학자가 낫습니다 - 한 명의 사상체계를 마스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일단 일진급 학자가 '학'을 다루는 방법론이나 태도를 학습하게 되기에 기본기가 쌓이게 되고, 다른 견해에 대해서 어떤 견지에서 비판을 전개하는지를 배우게 되기 때문에 해당 학자를 둘러싼 논쟁 자체에 대해 학습하게 되는 것은 물론, 전체 학문 체계 자체를 파악을 하게 됩니다. 예를들어, 마르크스에 정통하게 된 사람은 자유주의/사회주의/신좌파/페미니즘/구조주의/공동체주의 등의 사조와 경제학/역사학/사회학/철학/정치학/법학/정신분석학/문학 등의 개별과학에 대한 이해가 증가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관심 분야 하나를 정해서 그 분야에 해당하는 학자의 견해를 반복적으로 학습한다면, 단기간에 독해력이 증진될 것이며 글쓰기에 보탬이 될 것입니다.
그외 자잘한 팁
- 무조건 짧게 쓰는 게 정답은 아닙니다. 이사야 벌린의 <<낭만주의의 뿌리>>에서는 20줄 정도가 한 문장인 경우도 있습니다. 읽다보면 숨이 가쁘죠. 그렇지만 독자의 시선을 뗄 수 없게하는 힘이 있습니다. 강조를 주는 거죠.
- 의도적으로 관념어들 사이에 순수 우리말을 섞어 씀으로서 강조를 주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위에서 제가 '무식이 퉁탕 튀는'이라는 표현을 쓴 바 있는데, 다소 거친 표현이긴 하지만 시선은 확실히 끌 수 있습니다.
- 이와 유사하게, 한자나 영어를 섞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돌이킬 수 없는 지점'보다 'Point of no return'이라고 쓰는 게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에 좋습니다.
- 위에서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만, 정의는 적확해야 하며 뜬구름 잡는 표현을 써서는 안 됩니다. "천문학은 우주와 그것이 포함하는 천체에 대해 탐구하는 학문이다"라고 쓰는 것이 정답이고, "한 순간의 선택은 시간을 거쳐 태풍이 된다"라고 쓰는 것은 오답입니다.
- 위에 언급되었던 나쁜 정의에 반하는, 좋은 정의의 예시를 들어드리겠습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국가 통치의 특징은 무엇인가. 그 하나가 이념적 정치적 타자를 폭력으로 분쇄하는 완력장치라면, 또 하나는 매체 군대 등 기제들을 동원해서 국가와 자본 독재에 대한 피지배자의 합의를 조장하는 등 사회적 헤게모니의 장악을 위한 공작을 벌이는 것이다." 정의할 대상을 먼저 제시한 뒤, 이에 부합하는 정의를 제시합니다. 이런 것은 시를 100번 필사한다고 배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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